
크래쉬
영화 ·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1996
캐나다, 영국 · 스릴러, 드라마 · 1시간 40분
자동차 사고 이후 ‘제임스’는 같은 사고에서 살아난 ‘헬렌’과 재회한다. 자동차 충돌에서 느껴본 적 없는 성적 자극을 느낀 그는 ‘헬렌’을 통해 같은 쾌락을 느끼는 비밀 집단을 알게 된다. 새롭게 눈 뜬 욕망은 통제 불가능해지고, 점점 격렬해져 결국 죽음의 경계까지 넘나들게 되는데… 파괴를 향한 가속일까? 해방을 향한 질주일까?
포스트
이 작품이 지루했다면 크로넨버그의 설계에 정확히 자리한 것. 기술과 미디어의 대리경험으로 감각이 포화한 세계에서 자동차 사고는 거대한 진동, 살을 짓이기고 뼈가 쪼개지는 긴장이자 충격이 됩니다. 그렇기에 인물들은 절대적 절정을 향한 시도를 반복하죠. 이 시도의 끝이 필연적으로 죽음이라면, 영화의 형식 자체도 거기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물의 몸은 우아하고 권태롭게 조명되며, 그 무동성으로 이미 죽음을 닮아 있습니다. 크로넨버그의 작품 세계는 인간이라는 종이 너무 낡았다고 여러 번 말해왔죠. 프로이트가 말한 ‘모든 생명의 목표는 죽음이다’를 떠올려보면 왜 낡은 인간의 두 번째 살이 기계여야 했는지 맞아떨어집니다. 무기물과 결합된 유기물은 비생물, 꼭 죽음과 같은 상태일 테니까요. 이 작품의 후손인 줄리안 뒤쿠르노의 <티탄>을 함께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어요. 티탄이 이 융합의 끝을 뜨겁고도 기괴한 탄생으로 밀어붙인다면, 크래시는 같은 자리에서 프로이트의 말 위를 차갑게 공회전합니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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