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책 · 이디스 워튼, 2020
최초의 여성 퓰리처상 수상 작가, 이디스 워튼이 쓴 성장 소설 미국 문단에서 여성의 성적 열정을 다룬 최초의 본격 문학 ▶ 워튼은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하나다. ─ 《옵저버》 ▶ 여성의 성적 열정을 솔직하게 다룬 최초의 작품. ─ 신시아 그리핀 울프(평론가) /“사랑이 핏속에서 즐겁게 춤을 추는데 어디에서 태어났건, 누구의 자식이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여름』에서 /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 수상 작가 이디스 워튼의 『여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8번으로 출간되었다. 1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피난민을 돌보며 전쟁의 상처를 수습하던 작가가 단 몇 주 동안의 휴식기에 써 내려간 이 작품은 비극적인 전쟁의 한가운데에서도 “창작의 희열이 정점에 이르러” 집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은 미국 문단에서 젊은 여성의 성장을 다룬 최초의 본격 문학으로, 주인공인 ‘채리티’가 연인과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대면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성장의 요소로서 특히 여성의 성적 열정을 전면에 내세운 이 소설은 인습과 전통에 맞서 자신의 욕망을 직면하는 여성을 묘사해 미국 문단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감각적인 문장 속에 대자연의 성장과 여주인공의 정신적 성숙을 교차시킨 『여름』은 작가 워튼이 생전 가장 애착을 가졌던 작품이기도 하다.
포스트
재작년에 읽고 썼던 독후감 보는데 어떻게 이렇게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드네 올여름이 지나기 전에 다시 읽어볼걸 그랬어 - 이상은 내가 의도하지 않게 나에게 찾아와서 나한테 뭔가를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이상과 함께하는 그 시간은 정말 행복하다. 그 순간이 정말이었는지, 꿈이었는지 헷갈릴 만큼이나…. 그러나 결국 사라져 버리고, 내가 현실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듣고서는 굿. 한마디 남기고 쌩 하고 사라져 버릴 만큼 매정하다. 그런데 현실은? 현실은 나는 짐승 같은 삶에서 구원해주고 나를 먹여주고 키워준다…. 로열 씨가 채리티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이 현실에서 산다는 건 끝내주게 재미없는 일이고, 이상을 추구하던 사람이 결국 현실을 산다는 것만큼 모욕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을 사는 것보다 현실을 사는 것이 더 편하고 안정적일 것은 분명하다. 로열 씨에게 돌아간 채리티의 모습이 딱 그렇다. 모욕적이도 재미없지만, 채리티는 그가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줄 것이란 걸 안다. 그래서 결국 현실을 사는 것으로 서사가 끝나고 있기도 하고…. 하지만 현실이 마냥 안정적이진 않다. 로열 씨가 현실에 속하는 인물이기는 하나, 그 현실의 영역엔 로열 씨만 있는 것이 아니고 뭔… 상담실이었나 그 박산지 의산지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은 채리티의 브로치에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매긴다. 이처럼 현실은 인간이 이상을 찾을 때, 그에 대해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상을 추구하던 그 사람은 그 이상과 더 멀어지고 싶지 않으므로 말도 안 되는 값을 지불하고 그 이상을 겨우 잡아낸다. 로열 부인이 된 채리티가 그 파란색 브로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아무리 봐도 로열 씨보다는 이방인 남자를 닮은 그 아이를 보며, 로열 부부는 무슨 생각을 할까. 현실 속에 남은 이상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거기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후회만 남기지 않을까? 후회가 남으면 차라리 다행이겠다. 현실 속에서 이상이, 그 현실에 물들어서 색이 다 바래는 것이 더 끔찍할 테니까. 채리티는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낼까. 채리티는 언젠가 하니를 마주할 텐데, 파란색 브로치를 가슴에 달고서 하니를 마주할 때, 그의 얼굴에 비치는 표정을 보고 침착할 수 있을까, 채리티는…. 채리티는 하니와 마주하고 짧으면 며칠, 길면 몇 년을 괴로워하며 앓을 것이다. 이상을 마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결코 현실로만 살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 있는 것이 편안하고 안전하며, 이상에 뛰어드는 것이 불안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채리티는 로열 씨가 죽을 때까지 그의 옆에서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혹은, 만약에, 정말 만약을 가정해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채리티가 그 불안과 위험에 뛰어드는 순간 그는 온 살갗이 다 타 버리는 한이 있어도 이상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상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온 살갗이 다 타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고서 좀 우울했다. 이상을 추구하던 인간이 결국엔 현실로 돌아가게 되는 이야기라니. 절망적일래도 이렇게 절망적일 수가 없다. 난 정말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인데, 내가 채리티처럼 되면 어떡하지, 정말…. 이 생각을 여러 번 하면서 내린 결론은, 그러니까 나는 어떻게든 하니에게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네들턴행 열차를 타고 하니를 만나든, 폐가에 들어가서 하니를 기다리든. 비참하고 위험하고 혼란스러울 테지만 이상을 잡으려는 삶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온 살갗이 다 타 버릴 각오를 할 마음을 먹어야 한다. 무섭고 떨리는 일이지만, 혹여 내 살갗이 다 타 버리더라도 난 이상을 마주할 수 있게 될 테니.
한여름의 꿈이자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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