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에 읽고 썼던 독후감 보는데 어떻게 이렇게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드네 올여름이 지나기 전에 다시 읽어볼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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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내가 의도하지 않게 나에게 찾아와서 나한테 뭔가를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이상과 함께하는 그 시간은 정말 행복하다. 그 순간이 정말이었는지, 꿈이었는지 헷갈릴 만큼이나…. 그러나 결국 사라져 버리고, 내가 현실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듣고서는 굿. 한마디 남기고 쌩 하고 사라져 버릴 만큼 매정하다.
그런데 현실은? 현실은 나는 짐승 같은 삶에서 구원해주고 나를 먹여주고 키워준다…. 로열 씨가 채리티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이 현실에서 산다는 건 끝내주게 재미없는 일이고, 이상을 추구하던 사람이 결국 현실을 산다는 것만큼 모욕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을 사는 것보다 현실을 사는 것이 더 편하고 안정적일 것은 분명하다. 로열 씨에게 돌아간 채리티의 모습이 딱 그렇다. 모욕적이도 재미없지만, 채리티는 그가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줄 것이란 걸 안다. 그래서 결국 현실을 사는 것으로 서사가 끝나고 있기도 하고….
하지만 현실이 마냥 안정적이진 않다. 로열 씨가 현실에 속하는 인물이기는 하나, 그 현실의 영역엔 로열 씨만 있는 것이 아니고 뭔… 상담실이었나 그 박산지 의산지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은 채리티의 브로치에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매긴다. 이처럼 현실은 인간이 이상을 찾을 때, 그에 대해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상을 추구하던 그 사람은 그 이상과 더 멀어지고 싶지 않으므로 말도 안 되는 값을 지불하고 그 이상을 겨우 잡아낸다.
로열 부인이 된 채리티가 그 파란색 브로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아무리 봐도 로열 씨보다는 이방인 남자를 닮은 그 아이를 보며, 로열 부부는 무슨 생각을 할까. 현실 속에 남은 이상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거기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후회만 남기지 않을까? 후회가 남으면 차라리 다행이겠다. 현실 속에서 이상이, 그 현실에 물들어서 색이 다 바래는 것이 더 끔찍할 테니까. 채리티는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낼까. 채리티는 언젠가 하니를 마주할 텐데, 파란색 브로치를 가슴에 달고서 하니를 마주할 때, 그의 얼굴에 비치는 표정을 보고 침착할 수 있을까, 채리티는….
채리티는 하니와 마주하고 짧으면 며칠, 길면 몇 년을 괴로워하며 앓을 것이다. 이상을 마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결코 현실로만 살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 있는 것이 편안하고 안전하며, 이상에 뛰어드는 것이 불안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채리티는 로열 씨가 죽을 때까지 그의 옆에서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혹은, 만약에, 정말 만약을 가정해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채리티가 그 불안과 위험에 뛰어드는 순간 그는 온 살갗이 다 타 버리는 한이 있어도 이상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상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온 살갗이 다 타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고서 좀 우울했다. 이상을 추구하던 인간이 결국엔 현실로 돌아가게 되는 이야기라니. 절망적일래도 이렇게 절망적일 수가 없다. 난 정말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인데, 내가 채리티처럼 되면 어떡하지, 정말…. 이 생각을 여러 번 하면서 내린 결론은, 그러니까 나는 어떻게든 하니에게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네들턴행 열차를 타고 하니를 만나든, 폐가에 들어가서 하니를 기다리든. 비참하고 위험하고 혼란스러울 테지만 이상을 잡으려는 삶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온 살갗이 다 타 버릴 각오를 할 마음을 먹어야 한다. 무섭고 떨리는 일이지만, 혹여 내 살갗이 다 타 버리더라도 난 이상을 마주할 수 있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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