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h – 취향의 기록과 축적, 연결
이 책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 기반한 나의 연애관을 확장하고 다듬어주었다. 프롬은 사랑을 배우고 연마해야 할 하나의 기술로 보았고, 나 역시 그동안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사랑의 핵심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에로스의 종말은 이 노력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지점을 짚어주었다. 아무리 애써도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이해 불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랑하고 존중해나갈 용기가 필요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래는 에로스의 종말 내용 정리) 1) 현대 사회는 건강한 사랑을 자존감을 지키는 사랑, 상대에게 의존하지 않는 사랑,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사랑, 감정적으로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관계, 나를 소모시키지 않고 오히려 성장시켜주는 관계로 정의한다. 그런데 이 모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계의 궁극적 기준점은 여전히 '나'—나의 안정, 나의 자존감, 나의 성장—에 있다. 상대방은 결국 이 기준을 충족시켜주는 도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즉 타자를 진짜 타자로 만나는 게 아니라, 자아 항상성 프로젝트의 도구로 취급하며 자신의 건강과 안정을 도모하는 나르시시즘적 태도라는 것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타자란 내가 가진 지식과 상식으로 이해·예측·통제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 존재와 진짜로 마주친다면 자연스럽게 충돌, 재난, 흔들림, 위험 같은 부정적 감각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관계 속에서 이런 불편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면, 두 가지 중 하나이다. 그런 존재와의 마주침 자체를 회피했거나, 상대에게서 사실은 이해 가능한 자기 자신의 모습만 보고 있는 것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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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woo1개월 전

2) 타인이 더 이상 낯선 존재로 다가오지 못하고, 그저 자아의 연장선에서 소비되는 대상이 되어버린 원인을 성과사회와 투명사회의 결합에서 찾는다. 성과사회는 '할 수 있음'을 전면에 내세워 사랑을 수행해야 할 프로젝트, 관리해야 할 역량으로 재편함으로써 사랑에 대해 잘 할 수 있음에 대한 능동성을 강조한다. 투명사회는 모든 정보를 노출시켜 타인을 감싸던 베일, 거리, 비밀을 제거한다. 그 결과 타인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줄 수 있는 긴장감과 신비감이 사라지고, 자본주의 사회의 전시 상품이 되어버린다. 여기에 데이터화가 더해지면서 타인은 계산 가능한 정보로 환원되고, 원래 예측·통제 불가능해야 할 존재가 오히려 통제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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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woo1개월 전

3) 이러한 사회 모습에, 이해·관리·통제할 수 없는 사랑에 빠져버리는 수동성을 회피하지 않고 견뎌내는 에로스가 필요한 이유를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진짜 타인과 마주친다는 것은 지금의 삶의 방식과 사회질서가 전부는 아니라는 가능성에 노출되는 일이므로, 에로스는 필연적으로 기존 질서와는 다른 삶, 다른 사회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경험이 되어준다. 둘째, 사랑은 자아를 걸고 통제 불가능성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용기를 요구하고 정치적 행동은 기존 질서를 걸고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를 요구하는 구조적으로 같은 종류의 용기이기에 에로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