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두가 나지 않아서 시도하지 못했던 영화. 이제야 조금씩 흙탕물이 맑아지기 시작했는데, 다시 뿌예지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버거울 것 같아서 피했었다. 그런데도 막상 상영 기간을 놓쳐서 보지 못하면 그 나름대로 미련이 남을 것 같은 마음이라 뒤늦게 영화관으로 갔다. 울지 않을 수 없는 영화라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한쪽 소매로는 부족해서 반대쪽 소매로 번갈아가며 눈물을 닦아냈다. 조용한 극장 안에서 큰 일렁임을 참아내기 어려웠던 장면은 버스에서 정원의 작은 울음이 점점 커져갔을 때. 이상하게 그 장면에서 내 모습이 많이 보였다. 정원의 울음이 자꾸만 크게 번져가는 이유를 알 것 같아서, 이제는 돌아갈 수 없음의 명확함을 자꾸만 깨닫는 것 같아서 그래서그래서.
극 중에서 은호가 정원에게 말한다. “내가 너를 놓쳤네.” 그러자 정원이 말한다. “내가 너를 놓은 거야. 우리는 서로를 놓은 거야. 그리고 그건 정말 잘한 선택이야.” 나도 놓아버린 일을 잘한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너를 놓은 건 잘한 일인 거야라고. 네가 나를 놓친 것도 잘한 일이라고. 어떤 날은 놓은 지점으로부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어떤 날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럼 그날엔 정원의 울음이 자꾸만 크게 번져갔던 것처럼 나도 오래 아주아주 오래 울어버리게 된다. 내가 너를 놓아버린 게 맞는 건지, 네가 나를 놓친 게 맞는 건지. 어쩌면 내가 너를 놓친 게 더 적합한 사실이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은호는 정원에게 햇빛을 준다. 선풍기 바람은 늘 정원을 향했고, 은호의 모든 중심은 정원이었다. 정원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정원 마찬가지로 모든 중심이 은호였다. 원작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던 터라 이 영화 역시 결말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현실의 지난함을 사랑이 이겨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은호는 정원의 부재가 자신에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뒤늦게라도 정원을 찾기 위해 있는 힘껏 뛰었고, 지하철에 탄 정원을 찾았다. 하지만 은호는 정원을 그저 말없이 바라본다. 정원 역시 그런 은호를 말없이 바라본다. 그때 카메라는 은호의 걸음에 집중한다. 발을 뗐지만, 정원에게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정원으로부터 한 걸음 멀어지는 은호의 방향. 그렇게 지하철 문은 닫히고 은호와 정원 또한 서로의 시야에서 멀어진다. 그래도 사랑이 이겼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는데, 결국엔.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만난 은호와 정원은 이미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만약이라는 말로 그 시간을 다시 되돌려 보지만, 그럴수록 더 사실화되는 건 되돌아갈 수 없음일 뿐이다. 때문에 이들이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단지 후회와 그리움뿐이지 않았을까. 정원에게 뭐든 다 해주고 싶었던 10년 후 은호와 그런 은호에게 다 받았다고 얘기하는 10년 후의 정원. 지금, 여기엔 이 둘만 남아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 물음표가 떠나지 않는다. 만약 은호가 지하철에 탔다면 정원의 말처럼 평생 함께했을까? 서로가 곁에 없었기 때문에 더 성장을 했고, 그 아픔이 동력이 되어 “잘될” 수 있었던 걸까? 물론 대개는 그렇다고 할 것이다. 각성의 시작을 위해선 종종 삶에 어떠한 변곡점이 있어야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낼 수 있는 힘이 조금은 더 강해지니까.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그렇지 않은 경우의 수도 있을 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헤어지지 않았어도 서로는 분명 잘될 수 있었을 거라고, 평생 함께했을 거라고. 정말 사랑이 이겼을 거라고 말이다.
엔딩에 다다를 땐 정원이 은호에게 “그때 내 집이 되어줘서 고마웠어.“라고 말한다. 아마 은호도 정원과 같은 마음이겠지. 불완전했던 시간이었지만, 서로가 서로의 안식처였기 때문에 그 시간을 함께 버텼을 것이고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은호와 정원이 존재하는 거겠지. 애초에 만약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잠깐이나마 그 불가능성에 기대고 싶었던 마음. 나는 그 마음을 조용히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는 당연하게도 결국엔,으로 끝나버리지만 나는 만약과 결국의 사이에 던져진 헛된 희망을 바보 같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래야만 내가 너를 사랑했던 시간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래야만 우리가 서로에게 잘될 거라고, 잘할 수 있다고 건넸던 시간을 지켜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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