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h – 취향의 기록과 축적, 연결
무연고로 죽은 사람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구청 공무원. 그가 해고되기 전 마지막으로 담당하게 된 사망자의 지인들을 찾아가 장례 소식을 전하는 이야기. . 어렸을 적 이 영화를 보곤 뭔지 모를 의무감에 시달렸다. 우리 삶은 이렇게 잊혀지고 만다는 것. 그것이 나를 '잊혀지지 않을만큼 충실한 삶'이란 허상에 매달리게 만든 것이다. 항상 사람, 기억, 경험, 자료 등에 집착하고 그 안에서 어떠한 존재감을 차지하려 버둥댔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 . 예전 부산에서 Christian boltanski의 개인전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신문 부고란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사진 수천 장을 모아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못 한다.'고 했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숨이 멎을 때 한 번, 그의 사진을 보고도 기억하는 이가 없을 때 또 한 번." -Christian boltanski. . 기억, ... 누군가의 추억이나 상처로, 기쁨 또는 슬픔으로. 혹은 지식이나 논리로, 동감 또는 반박으로. 모든 이에게 다르게 기억될 우리는 결국 우리를 만났던 모든 이들의 죽음과 함께 한 번 더 죽는다. . 영화는 이 기억되는 삶의 지점을 짚어낸다. 도대체 우리의 생과 살아가는 방식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나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 아무도 없어도, 그저 구청 공무원 하나만이 나의 장례식에서 추도문을 읊어준다해도... 우리는 그것으로 된 것일까? . 다만 기억될 욕망이 종적 보존의 욕망으로 치환되어 자녀를 남기고자 하는 것일까? 내 아이와 내 아이가 낳은 아이들이 결국 나를 기억하게 되는 방법일까? 하지만 난 증조할아버지 이름도 모른다. . 분명히 기억되고 싶다. 어떠한 사람으로서 바라는 모습이 있느냐고 하면... 정확히 모르겠지만. 내가 만들어내고 남긴 모든 춤과 사진과 조각들이 나를 기억하는 방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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