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h – 취향의 기록과 축적, 연결
화려한 액션과 그래픽 기술이 현대를 말해준다는 생각을 바로 잡고 싶습니다. <클레어의 카메라> 시청을 기점으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요약하면 ‘현대적’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리스 연극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은 영화에 통용되는 3막 구조는 인간의 몸을 기준으로 한 이야기 시스템이라고 봅니다. 대부분의 상업영화가 몸이 지루함을 느끼는 구간에 큰 자극을 배치해, 이야기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었으므로 고대인들이 〈타이타닉〉과 〈어벤져스〉를 보더라도 내용과 감정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거예요. 그러나 홍상수의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본능과 사회와 양심 사이에서 자신의 몸을 어디에 가눠야 할지 모르는 인물들, 그 머뭇거림 자체가 사건이 되는 이야기는 매우 현대적인 기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오래된 영혼이 홍상수의 영화를 본다면 공감할 수 없지 않을까요? 그가 다루는 도구가 너무 ‘요즘 것들‘이기 때문에. — 2024년 8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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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napwe4개월 전

근대와 현대를 어떻게 나누시는지도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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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iswami4개월 전

@idenapwe 오 한번 생각해 봐야겠어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라스콜니코프는 신이 더 이상 자신을 보지 않는다고 믿어요. 그런데 죄책감은 계속됩니다. 신은 죽었는데 왜 죄책감은 살아있을까요? 이 어긋남 자체가 근대적이라고 봅니다. 개인이라는 철학이 막 꿈틀대지만, 그것이 대전제는 아닌 상태죠. 현대는 다릅니다. 개인의 이성과 책임이 이미 암묵적이기 때문에, 죄를 짓더라도 개별적 선택일 가능성이 높아져요. 홍상수의 현대성이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낡은 몸과 빠르게 회전하는 이성 사이의 고민이라면(지금 보니 형식은 현대/내용은 근대인 것 같기도), 〈죄와 벌〉의 근대성은 나는 정말로 내 삶의 주체인가?라는 지형적 의심에 가깝지 않을까요? 쓰고 보니 이 글이 너무 기네요. 말씀 편하게 남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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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napwe4개월 전

@thisiswami 아아 ㅎㅎ 아닙니다 글 너무 잘 읽었고 저도 무척 동의가 되어서, 더 배움을 얻고파서 댓글을 달았습니다. 다시 보니 어투가 다소 맡겨놓은 것 마냥 뻔뻔하네요. 혹 실례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저 역시 기술의 발전이 현대와 연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서요. 말씀주신 것처럼 도덕(심지어 그 체계의 진위여부조차 의심되는)과 몸의 충돌이 홍상수 영화에서 무척 중요한 부분 같아요. 신이 자신을 보지 않는다는 게 릴케와 카푸스(라는 학생)의 서신집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더라고요. 이 이야기도 하고프지만, 너무 길어질 거 같아 이만 두고...ㅎㅎ 모쪼록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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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iswami4개월 전

@idenapwe 전혀 실례가 아닙니다! 그렇게 느끼지 않았어요. 앞으로 좀 더 깊이 근대와 현대를 나눠볼게요. 말씀해주신 릴케와 카푸스의 대화도 궁금해지네요. 언젠가 한번 다뤄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사려 깊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