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idenapwe 오 한번 생각해 봐야겠어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라스콜니코프는 신이 더 이상 자신을 보지 않는다고 믿어요. 그런데 죄책감은 계속됩니다. 신은 죽었는데 왜 죄책감은 살아있을까요? 이 어긋남 자체가 근대적이라고 봅니다. 개인이라는 철학이 막 꿈틀대지만, 그것이 대전제는 아닌 상태죠. 현대는 다릅니다. 개인의 이성과 책임이 이미 암묵적이기 때문에, 죄를 짓더라도 개별적 선택일 가능성이 높아져요. 홍상수의 현대성이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낡은 몸과 빠르게 회전하는 이성 사이의 고민이라면(지금 보니 형식은 현대/내용은 근대인 것 같기도), 〈죄와 벌〉의 근대성은 나는 정말로 내 삶의 주체인가?라는 지형적 의심에 가깝지 않을까요? 쓰고 보니 이 글이 너무 기네요. 말씀 편하게 남겨주시길!
@thisiswami 아아 ㅎㅎ 아닙니다 글 너무 잘 읽었고 저도 무척 동의가 되어서, 더 배움을 얻고파서 댓글을 달았습니다. 다시 보니 어투가 다소 맡겨놓은 것 마냥 뻔뻔하네요. 혹 실례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저 역시 기술의 발전이 현대와 연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서요. 말씀주신 것처럼 도덕(심지어 그 체계의 진위여부조차 의심되는)과 몸의 충돌이 홍상수 영화에서 무척 중요한 부분 같아요. 신이 자신을 보지 않는다는 게 릴케와 카푸스(라는 학생)의 서신집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더라고요. 이 이야기도 하고프지만, 너무 길어질 거 같아 이만 두고...ㅎㅎ 모쪼록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idenapwe 전혀 실례가 아닙니다! 그렇게 느끼지 않았어요. 앞으로 좀 더 깊이 근대와 현대를 나눠볼게요. 말씀해주신 릴케와 카푸스의 대화도 궁금해지네요. 언젠가 한번 다뤄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사려 깊은 말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