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ao.kr14일 전
나폴리탄 괴담의 핵심은 사건의 전말을 숨기고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하는 것이다. 결론을 명확하게 내지 않으며 또한 괴담 속 내용에 대한 설명도 제시하지 않는다. 특정 존재의 정체나 사건의 원인을 명확히 밝히지 않기 때문에, 독자의 상상과 해석에 따라 공포의 대상과 정도가 달라진다.
대표적인 유형이 특정 상황이나 공간에서 생존을 위해 따라야 하는 지침서의 형태로 된 규칙 괴담이다. 규칙 괴담의 가장 큰 특징은 배경에 대한 별도의 설명 없이 독자가 주어진 지침만으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추론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있을법한 일반적인 지침도 있지만 초자연적인 현상을 암시하는 지침도 있다. 이러한 비상식적인 지침은 공간의 정체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규칙 괴담 외에도 나폴리탄 괴담은 다양하게 창작된다. ‘나폴리탄 괴담’이라는 명칭과 분류는 국내 인터넷 문화에서 형성되었지만, 설명되지 않는 현상과 불완전한 정보를 통해 공포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해외의 여러 괴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SCP 재단의 창작물이나 일본의 팔척귀신·쿠네쿠네, 최근의 백룸 등이 그와 유사한 사례다. 국내에서는 기록이 부족하거나 사실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역사적 사건과 야사를 소재로 삼은 괴담도 자주 등장한다. 역사나 민속학과 연결하여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잘 알려진 괴담으로는 '강원도 악귀의 땅 괴담'과 '진시황은 살아있습니까?' 등이 있다. 최근에는 현대 배경의 괴담도 생산되는 중이다.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은 역사와 민속학을 다룬다는 점에서 기존의 한국형 나폴리탄 괴담과 비슷한 주제를 공유하면서도, 회상이나 과거 시점으로 진행되는 보통의 괴담과 달리 현재 시점으로 사건을 전개한다는 차별점이 있다. 또한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기보다 한국사 전반을 폭넓게 다룬다. 기록이 부족한 사건의 빈틈을 상상으로 채우기도 하고, 이미 익숙한 역사적 사건을 작가만의 해석으로 재구성하기도 한다. 기존 나폴리탄 괴담처럼 일부 정보를 의도적으로 누락해 미스터리를 만들지만 끝까지 설명을 유보하지는 않는다. 소설의 완결성을 위해 후반부에는 사건의 전말을 추론할 수 있는 비교적 명확한 단서를 제공한다.
소설은 가상의 기관인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에서 국내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이상현상 유적지를 탐사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이상현상 유적지는 총 여덟 군데로, 각각의 장소는 실제 역사적 유적을 바탕으로 하지만 작품 속에서는 특수 이상 개체가 출현하는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변모해 있다. 각 유적지 현장에서는 특수 이상 개체가 현실의 인간들을 해치거나 의식의 제물로 이용한다. 연구원들은 이상현상의 원인을 조사하고 추가적인 피해를 막기 위해 각 유적지에 투입된다.
작품에는 상당히 고어한 묘사가 등장한다. 사망 경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며, 그 과정에서 신체 훼손이나 신체 기관에 대한 잔혹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인터넷 연재작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작품이라는 점도 특징적이다. 이야기의 형식 역시 전통적인 소설 문법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유적지마다 규칙 괴담을 연상시키는 지침서가 제시되고, 그 안에는 이후의 전개를 암시하는 여러 장치가 숨겨져 있다. 채팅방 대화나 녹취록, 보고서 등의 형식으로 사건을 전달하기도 한다.
특수 이상 개체의 모티프는 실제 역사 인물에서 가져오기도 하고, 문학 작품이나 설화·야사에 등장하는 인물에서 가져오기도 한다. 각각의 유적지는 하나의 시기를 대표하고 있는데,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 폭넓게 다룬다. 작품은 역사적 사건의 중심인물뿐 아니라 기록에서 쉽게 사라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돌린다. 궁궐과 사찰 같은 역사적 공간에 이름 없는 사람들의 원한과 기억이 남아 있다는 상상은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중요한 설정이다.
극중 등장하는 백제의 멸망이나 무신정변, 임오화변 같은 사건은 대개 왕과 지배층, 정치적 변화의 관점에서 기억된다. 경신대기근처럼 수많은 평범한 사람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 역시 대중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낯설다.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은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익숙한 한국사를 기록 밖의 사람들의 시선에서 다시 바라보게 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역사적 사실과 괴담적 상상을 결합해 정사 뒤편의 빈 공간을 상상하게 한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