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한 ‘도련님’을 다 읽었다.
분량은 그렇게 길지 않고 문체나 내용도 그리 어렵진 않아서 술술 잘 읽혔다.
다 읽고 나서 느꼈던 점 몇 가지를 적어본다.
1. 근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세련된 문체와 묘사
이 소설의 태도라고 해야 하나? 상당히 간결하고 깔끔한 묘사와 주인공의 독백, 이야기를 서술해나가는 스타일 자체가 오늘날 읽는데도 전혀 걸리적거리거나 시대의 차이로 인해 멈칫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고 느껴져서 신기했다.
사실 소설의 주요 이야기가 진행되는 장소가 학교이고 주인공이 시골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기는 소동인 만큼 과거와 오늘날의 큰 차이가 없을 법 한 배경이라고 할 법도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몰입감 있게 서술하는 방식이 개인적으로는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2. 직관적이고 명확한 이야기
소설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주인공이 대학을 졸업한 후 한 시골 학교의 수학 선생으로 부임하게 되는데, 그 시골 동네 학교에서 만난 선생들 중 겉으로는 명망 있고 위신을 챙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로는 음흉한 계책으로 불의한 짓을 모의한 사람들을 동료 수학 교수와 함께 혼쭐을 내준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중간중간 이 나쁜 선생들의 정체를 어떻게 알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그들의 정체를 깨닫게 되는 몇 가지 사건들도 있지만 정말 크게 보자면 이 이야기가 핵심이다. 다시 말해 권선징악이라는 보편적이면서도 통쾌한 이야기라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만큼 이야기의 전개가 뻔하고 때에 따라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도련님에서의 권선징악은 그렇게 단순하다거나 빤하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왜 그럴까? 나는 주인공의 아주 독특한 성격이 이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 데 한몫을 했다고 본다.
주인공인 ‘도련님’은(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실명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앞뒤 재지 않고 덤벼드는 성격에 늘 손해만 보고 살아왔으면서도 본인의 그 옳다고 생각하는 정의관과 신념만은 절대 굽히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그 기준에 어긋나는 불의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나 무리들을 보면 지체 않고 반기를 들 줄 알고, 분개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이글이글 불타는 열정과 신념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런 그라고 해서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불의한 것에 들고일어난다고 해도,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강단 있고 조리 있게 비판하는 일종의 연설을 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말을 하려면 머릿속으로는 아무리 구구절절 비판하고 싶은 것들이 떠올라도 그것을 막상 입으로 뱉어내려 하면 목에 걸려 결국 나온 말들은 어설프고 감정에 호소하는 볼품없는 웅변이 되고 만다. 그래서 도련님은 그렇게 교묘하고, 능구렁이처럼 온갖 수사적 표현과 점잖은 표현, 그럴 듯한 논리를 갖추고 나오는 불의한 선생 일당들에게는 도저히 말로는 상대가 못 된다. 그러므로 진실은 그 선생들이 먼저 나쁜 짓을 한 것이 맞는데, 보기엔 무고한 선생들이 비뚤어진 성격의 도련님에게 억울하게 당하는 것 같은 장면들이 연출되곤 한다.
그리고 도련님도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잘못한 점이 있으면 당당히 사과하고 잘못을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면서도 아닌 것처럼 넘어가려거나 도망칠 그럴 듯한 변명을 마련해두고 그런 짓을 벌인다거나 하는 비겁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이런 매력적인 주인공의 성격 덕에,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당대 일본 사회와 인간 군상의 부조리한 면면들이 파해쳐지는 묘사들은 오늘날 각종 미디어에서도 많이 다뤄지는 블랙 코미디, 더 나가서는 사회 풍자의 면이 도드라진다.
그리고 난 풍자를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당시 사회와 인간을 꿰뚫어 본 통찰에 감탄하며 즐겁게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3. 실제 작가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소설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실제로 도쿄에서 학교를 졸업한 뒤에 시고쿠라고 하는 시골 동네의 중학교 교사가 되었다.
주인공인 도련님이 도쿄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시골 동네의 중학교 수학 교사로 부임하는 소설의 가장 중요한 상황 자체가 작가 본인의 경험으로부터 나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각자 개성과 성격이 모두 독특하고 디테일해서 읽는데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한다.
역시 뭔가 창작을 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면 볼수록 나중에 그게 큰 도움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이렇게 도련님을 다 읽었다. 내용이 앞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길지도 않고, 그리고 중요한 건 꽤나 재밌는 소설이기 때문에, 시간이 난다면 한 번씩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주인공의 성격이 매력적이고 툭툭 내뱉는 독백이나 생각을 늘어놓는 게 너무 재밌어서 계속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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