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h – 취향의 기록과 축적, 연결
보면서 주인공이 당하는 폭력들에 분노하고 고통에 공감하게 되겠지만 문득 그 폭력을 가하는 주변인들과 내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혹시 비슷한 사람이었던 적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성찰하게된다. 누구도 의심하기 어려운 순수한 약자로 여겨지는 여자 꼬마아이의 진술 하나로 한 가족이 파괴되는 모습이 나온다. 또래보다 조금 조숙한 생각을 가져버린 여자아이가 선생님에게 애정을 느끼고 스킨쉽같은 행동을 하는데 유치원 교사인 주인공이 엄격하게 훈계하고 교육하는 모습에 여자아이는 자존심이 상한건지 수치심을 느낀건지 약간의 분노인지 때문에 다른 어른들에게 거짓말을 뱉어버리고 그 말 한마디에 상황은 막을 수 없이 커지고 변해 버린 상황에 거짓말을 멈출 수 없는 아이는 거짓 진술까지 하면서 교사를 위험에 빠트린다. 사실 거짓말을 하는 여자아이에게 화가 날 수도 있지만 당연히 아직 생각이나 정신이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 이고 그럴 수 있다고 어느정도 이해해볼 수는 있는데 문제는 그 이후의 상황들이다. 소아성애자나 아동성폭행범 취급하며 주인공을 괴롭히는 마을 사람들과 돌을 던져서 주인공의 집을 훼손하거나 나중에는 키우던 강아지까지 죽여버리는데 그 주변인들이 하는 폭력의 행위들이 공포와 분노를 만든다. 종종 그런 경우들을 본다. 몇 년 전 지나가다 민원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교사를 추모하느라 보낸 화환들이 놓인 학교를 봤다. 그 가해자 민원인의 가게 앞에 사람들이 테러를 한 뉴스도 봤다. 가게 앞에는 ’살인자‘, ’당신이 죽였다.‘ 등의 비난의 메모들이 붙어 있었다. 뭔가 그런걸보면 이 영화가 떠오른다. 물론 저 사건은 이미 가해 사실이 확실해서 비난받아야 할 만한 상황이라 당연히 다르긴 하겠지만 저 영화에서처럼 주변 사람들도 그리고 나까지도 당연한 사실로 생각하고 폭력을 행하는 경우가 있을 지 모르니까 연예인, 인플루언서, 유튜버, 뭐 누가 뭐 했대 하고 인터넷이나 뉴스에 잠깐 오르는 순간 그 사람에게 테러가 당연해진 거 같다. 당사자의 인스타라거나 댓글이라거나 정당한 폭력? 같은 게 난무하게 된다. 나는 애초에 인터넷에 댓글을 쓰거나 하는 사람은 전혀 아니지만 나도 친한 친구들과의 카톡방에, 대화에 그런 기사나 내용들을 공유하거나 댓글들처럼 떠들어 대기도 하는 사람이니까 무슨 정의로우려고 댓글을 안달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냥 보여지는 게 두려워서 당사자가 볼 수 있는 공간에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인터넷이나 댓글들은 당사자가 볼 수도 있고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그게 폭력이 될 수 있으니까. 이 영화의 내용처럼 기사들이나 루머나 어떤 수사의 시작이 확실한 범죄나 잘못을 알려주는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수사가 끝나서 확실한 범죄 사실이 되거나 정말로 비난 받아야하는 상황이 되었더라도 내가 공개적으로 비난의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정말 그런 비판의 목소리가 필요한 경우가 있을 때도 있겠지만 요즘보면 무슨 평소에 받은 분노와 스트레스들을 정당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만을 노리다가 터뜨리듯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서 자신의 정의로움을 내세우고 싶어서 비판의 대상을 찾듯이 뭔가 논란이 생기는 사람만 나타나면 거기에 비판을 하며 정의감 채우고 거기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서 나도 그렇게 보일까봐 글 같은 건 적고 싶지않다. 오래전에 이 영화를 보게되어서 그럴 지도 모르겠다. 가치관이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영화라고 생각해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주인공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화면으로 나를 바라볼 때 폭력을 행사하는 그 사람들중에 한명으로 날 보는 듯한 기분이 뭔가 불편하다..사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을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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