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5년도에 개봉한 맥베스를 아주 좋아한다. 고전을 시각적으로 아주 훌륭하게 축조한 작품이며 그 재현도에는 배우의 얼굴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고전이 지니는 무게에 걸맞는 비장미가 그대로 드러나는 마이클 패스밴더의 깎아지른 듯한 그 선. 붉은 대지와 대비되는 형형하도록 푸른 눈빛. 그 감각을 알았기 때문에 오디세이의 캐스팅은 다소 아리송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미술에 아주 진심이면서 화면을 장악해야 하는 가장 큰 미적 요소인 배우의 비주얼을 왜 이렇게 의도했을까. 놀란의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라는 영웅의 모험담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시의 영웅이 아닌 제우스의 법을 어긴 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전쟁에서 승리한 오디세우스가 귀향하는 모험담이 아니라 속죄의 순례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의 옆에는 그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죄책감이 아테네의 모습으로 늘 현현해있다. 자신의 죄를 똑바로 직시하고 용서를 구하도록 여신은 길을 이끌고 노병은 그럼에도 한참을 헤맨 이후에야 혈혈단신으로 바다를 향해 나아가 자신을 바친다. 그렇기 때문에 탈인간화한 영웅이 아니라 다소 추레하게 늙은 인간의 모습을 의도했을 수도 있다..(하지만 역시 초라한 맷 데이먼의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리 이 영화가 욕망을 거세하고 죄의식을 두드러지게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지언정 장엄한 이 작품에는 그만치 주인공다운 무거운 카리스마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야 이야기에 온전히 몰입하고 사랑할 수 있지 않나..?)
2. 크리스토퍼 놀란이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을 끔찍하게 혐오하는 편이고 그 때문에 늘 그의 영화에 감점을 크게 매기는데 오디세이는 의외로 좋은 면이 있었다. 나야 뭐 앤 해서웨이를 사랑하지만 그의 연기나 그가 맡아 온 역할들은 무게감은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이토록 무거운 고결함이 느껴지는 연기를 잘할 줄은 생각도 못했고 피로 타고난 귀족적 권위가 잘 느껴져서 아주 좋았다. 키르케는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요소였다. 힘 없고 초라한 여성의 모습으로 돼지로 변하는 끔찍한 마법을 말 그대로 손으로 빚어내는 걸 보고 좋아서 소리 지를 뻔. 오디세이에서 “힘”을 느낄 수 있는 몇 장면 중 하나를 이렇게 할애해 주다니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면 아무리 원전이 있어도 남성의 전유물일 때만 힘을 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의외였다. (ㅋㅋ) 그렇지만 칼립소를 회상용 매개로만 사용한 건 선 넘었다고 생각한다. 원전에서 오디세우스를 가장 오래 잡아 둔 건 칼립소였는데 아무리 이 영화에서 욕망과 사랑이 축소되었다지만 후반 한 시간을 귀향 신에 전부 할애할 바에는 칼립소도 조금 더 보여 주면 좋지 않았을까. 샤를리즈 테론이 이렇게 아름답게 나오는데 아깝지도 않아? (테넷의 데비키를 보며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느끼며..)
3. 크리스토퍼 놀란의 액션은 여전히 구리다. 본 시리즈의 그이를 데려다 놓고 이런 액션을 찍다니. 오디세우스가 구혼자들을 물리치는 장면은 일부러 압도적이지 않고 나이 먹고 지친 왕이 왕위 계승을 위한 마지막 숙청을 힘겹게 해내는 장면인 줄은 안다. 하지만 다크나이트 시리즈에서도 느꼈던 이 둔탁한 삐걱거림을 참기가 참 어렵다.
4. 분명 좋은 요소를 더 많이 느꼈는데 악플 대장정처럼 써져 버렸다. 혹자는 거룩하게 조소된 오디세우스가 거북하다고 했지만 나는 이 점이 깨나 좋았다. 원하지 않던 전쟁에 징집되어 종교적 신의를 깨트리고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이 지략가가 정녕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영웅이라는 단어 아래에서 모든 게 미화되지 않고 낱낱이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순례로 보여 주고 그의 죄의식이 아테네라는 여신으로 표현된 것도 아름다웠다. 끝내 돌아와서도 떨쳐지지 않는 그 감정을 눈물로 위로하며 사라진 아테네와 그때서야 오디세우스로서의 귀환을 준비하며 시작되는 종막은 훌륭한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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