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는 건 어떤 걸까? 그리고 그것을 “많이” 본다는 건 또 어떤 걸까? 안미옥 시인의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를 마주하고 가장 오래 머무르게 되었던 질문이다.
종종 나는 무언가를 오래 그리고 많이 보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다. 그 시선 속에는 늘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도 느낄 때가 많은데, 많이 보는 행위는 어쩌면 그만큼 마음을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지 않고 응시하는 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마주하게 될 삶의 장면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게 무엇이든 잘 보고 또 정확히 보고 뒷걸음치지 않겠다는 것이기에. 하지만 시인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전부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류 혹은 오해의 순간까지 객관적으로 보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지점이 안미옥이라는 시인을 더욱 신뢰할 수 있게 한다.
언젠가 이 시집에 관한 코멘트를 <‘나’에서 ‘나’로>라고 짧게 기록해 놓은 적이 있다. ‘나’가 본 것들은 바깥에 있는 것들이지만, 그것들을 통해 얻게 된 여러 층위들의 무언가를 소화하여 남게 되는 건 결국 ‘나’로 귀결되는 것 같다고 느껴서.
시인의 사유가 나를 조금 더 곧은 사람이 되고 싶게 했던 작품이다.
댓글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