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에 적힌 한 문장을 마주했을 때 나는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윤해서의 『그』는 "그"와 "그"라는 목차로 구분된다. 두 개의 서사는 거의 동일하게 진행되지만, 주어가 바뀜으로써 동일한 두 개의 이야기가 전혀 다른 각각의 이야기로 느껴지게 하는 감각을 독자에게 건네준다. 서사적 사건을 진행시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대신, 문체 혹은 사유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강한 작품이다. 때문에 서사 바깥에서 마주한 윤리적인 태도, 문제 등을 오히려 더 직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는 한국 문단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던 구조이며, 이러한 시도는 문학장의 다양성을 넓혀가는 데 충분한 도움닫기가 될 것이다.
작품의 연장선에서, 나는 꽤 오래전부터 애도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를 애도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적확한 애도라는 것이 있는지 긴 시간 그곳에 머물렀음에도 도출되지 않았다. 그리고 만일 무언가 나왔다 하더라도 언제든 그 값이 가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함부로 이해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해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오만함이기 때문에 가늠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담아두려고 할 뿐이다.
한때 깊숙이 담아두어 움푹 파인 곳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메꿔진다는 걸 알고 있다. 자연스레 지금보다 기억이 옅어진다는 것도,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애도가 끝이 난 걸까? 그렇게 된 일이 옳지 않다던가 비판을 받아야 하는 일인 걸까?
답을 구하는 물음표는 아니다. 기간을 염두에 두고 애도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고 싶은 것뿐이다. 어떤 건 답을 몰라도 그저 품고 있는 것만으로 나를 답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게 해 준다고 했지만. 책임을 갖는다는 건 때로 말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담아만 두어야겠다고 매듭을 짓게 된다.
희미해지더라도 잘 보이는 곳에, 담아냈던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마음을 갖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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