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1)
우호적 감정
스타트업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작품. 개인적으로는 가장 감흥이 없었다. 물론 내가 아직 직장 생활을 해 본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스타트업이라는 세계의 분위기나 용어를 잘 몰라서 그런지 더더욱 잘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점은 여럿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스타트업이라는 곳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기에 뭔가 골수 대기업보다는 ‘젊고’, 무언가 더욱 ‘개방적’일 것 만 같고, ’수평적’이라던가, 그런 이미지의 선입견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이라 해도 결국 우리 사회의 커다란 스펙트럼 속 작은 바코드 줄처럼 낑겨있는 것도 사실이라, 그 안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너무 다른 세상을 겪었고 너무 다른 것을 알아 왔고 너무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나 우리나라 같은 경우 소위 ‘한강의 기적’이라는 고도성장 시기를 거치며 얼마나 사회 제도와 인식, 문화가 급변했는가? 우리는 지금 어릴 때 전쟁을 겪은 세대, 혹은 어린 시절 세상을 보는 방법이 신문이나 흑백 TV밖에 없던 세대와 기억의 태초부터 온갖 전자기기와 SNS, 스마트폰을 겪은 세대가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 상황을 극단적으로 함축해서 말하면 결국 수직과 수평의 충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작은 스타트업이라는 사회 안에 이렇게 방대한 스펙트럼이 구겨 넣어지면서, 결국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는 온정과 관용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지독히도 염세적이고 현실적인 벽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단편이다.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내가 너로 살아보지 않은 것처럼 너도 나로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저 서로를 이해한 척, 그러니까, 진짜 같은 가짜처럼, 이 수직선과 수평선 위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을 수밖에 없지 않나.
잉태기
이 작품은 주인공 서진과 서진의 엄마, 그리고 서진의 친할아버지(서진은 그를 ’지지’라고 부른다.) 세 명이서 얽히고설키는 이야기를 다룬다.
세 명의 가정적 배경은 우선 가정이 상당히 부유하고 여유 있는 집안이며, 서진은 어린 시절부터 전혀 모자람이나 부족함 없이 엄마와 지지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살아와, 소위 말하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성인이다.
그런 서진이 이제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서진의 엄마는 서진의 원정 출산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지지는 서진의 엄마가 추진(?) 하는 원정 출산을 극도로 반대하며, 어린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던 서진을 자꾸만 설득하고 마음을 돌려놓으려 한다.
결국 서진의 엄마와 지지의 사이가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고, 사실 둘은 서진이 잉태된 그 수간부터 시시 건건 서진을 두고 다투며 대립했었다는 것을 독자는 작품을 읽으며 알게 된다. 그리고 결국 이 오랜 감정의 퇴적이 결국 서진이 원정 출산을 위해 공항에 도착한 그날 폭발하게 된다.
서진은 양수가 터져 쓰러져 무어라 중얼거리지만 서진과 지지는 그런 서진의 마지막 말도 듣지 못한 채 서로 이성을 잃고 언성을 높이느라 듣지 못하며, 재밌는 사실은 이 글을 읽는 독자마저도 마지막에 서진이 무어라 중얼거리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작품은 고급 상류층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한심한 우화로 이를 통해 그들이 하는 행동들이 고급 지고 우아한 것이 아니라 한심하고 덜떨어지게 보이게 한다. 이런 측면은 다 큰 성인인 서진이 잉태할 생명에 대해서도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며 무능력하게 흘러가는 주인공 서진을 통해 더욱 부각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진이 잘못했나, 서진의 엄마가 잘못했나, 그것도 아니면 지지가 잘못했나가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가졌음에도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야욕과 욕심은 비단 물질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만족과 신념에서도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면의 서진이 양수가 터져 공항 땅바닥에 쓰려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런 서진을 두고도 또 의견이 충돌하며 언성을 높여 싸우는 서진의 엄마와 지지를 제시함으로써 이런 세태를 날카롭게 찌르지 않았나 싶다.
메탈
줄거리는 사실 뻔했다. 메탈 음악을 하고 싶던 세 청년이 나이를 먹어가며 서서히 빛바랜 꿈을 추억하게 된다는 내용.
인물의 상황을 음악, 밴드, 그중에서 메탈을 하고 싶어 하는 세 청년들로 설정했다는 건 철저히 이들의 현실과 이상 그 사이의 괴리감을 벌려놓기 위한 장치로 보였다.
그 장치가 너무 적나라하고 의도적으로 느껴져서 살짝 김이 빠지는 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독자들로 하여금 인물들의 공허함과 회한이 더 크게 몰려오게 하는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다만 다소 아쉬웠던 점은 메탈 밴드의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다소)딥한 세계관과 역사, 흐름을 모르면 무슨 맥락인지 잘 모를 법 한 상황이나 대화 서술이 좀 있다 보니 (물론 그런 요소들이 등장할 때마다 주석으로 짧고 친절히 설명이 되어 있다.), 읽으면서 몰입이 조금 깨진다 싶은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크게 걸리적거릴 정도는 아니었고, 오히려 나도 읽으면서 이런 메탈 밴드가 있구나 싶어서 검색도 해보고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고 싶어지는 생각도 들게 해줬다. 물론 여기서 메탈에 더 깊게 빠지긴 어려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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