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h – 취향의 기록과 축적, 연결
구겨진 종이와 구겨져 보이는 종이는 명백히 다르다. 기쿠치 노부요시는 평생 15,000권의 책 표지를 만들며 단 한 번도 포토샵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자르고, 풀을 바르고, 손아귀의 힘으로 종이를 구겼다. 그 사이 물질의 저항과 물리적인 시간이 고스란히 새겨졌다. 일종의 ‘아우라(Aura)’다. 디지털 세계는 이 시간을 단숨에 압축한다. 클릭 한 번에 구겨진 ‘효과’가 출력된다. 그로 인한 경제성에 쌍수를 들지만 기시감이 든다. 관념적 세계에서 작동하는 개념을 실존적 세계로 억지로 가져오려는 움직임. ‘포앳코어’, ‘퍼포머티브’, ‘어쩌구 저쩌구’. 그러한 버튼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보이기 위한 안경과 기쿠치의 보기 위한 안경 사이에는 기능적 차이 그 이상이 존재한다. 영화 중반, 기쿠치 선생이 종이를 끌어안는 모습은 ‘현실에 찐득하게 붙으려는 그러한 효과들은 무용지물이다’고 말하는 듯 하다. 가짜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는 현재. 기쿠치 노부요시의 수작업은 완고한 아집이 아니었다. 시뮬라크르가 범람하는 시대를 향한 육체적인 저항이었다. 15,000권이라는 무게는 이를 단단히 증명한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는 선생의 상처 난 손가락을 본다. 그리고 그의 입을 통해, 그 지난한 물리적 노동의 이유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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