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h – 취향의 기록과 축적, 연결
대학교 1학년, 틈만나면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이런저런 고전들을 탐독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적한 평일 오후의 도서관은 다소 한적했다. 어떤 곳은 어둑하니 조그맣고 쿰쿰한 분위기를, 또 어떤 곳은 층고가 높고 서늘했다. 기억 속 그 미로같은 구조의 열람실에는 크고 작은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 사이로 언제나 햇살 같은 것들, 아니면 그 곳에 이따금씩 머물다 가는 젊은 날의 반짝거림 같은 것들이 비추곤 했다. 나는 기꺼이 그 볕 속에 내 자신을 파묻거나 멀찍이 그와는 대조되는 암부 속에서 그것을 응시하듯 나를 감추기도 하며, 우주 같은 그 곳을, 저마다의 중력을 내뿜는 그 서적들 사이로 부유하듯 이끌려가며 지금보다는 말랑했을 회백질 속 우주에 목적과 방향을 알 수 없는 지도를 그려나가곤했다. 당시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한 수업을 듣기도 하며, 시기 혹은 유행(?)이 살짝 지나간 그 사상에 심취하며 이런 저런 것들을 탐독하며 순수한 향유를 즐기곤 했다. 이 책은 그 중 하나인데, 당시에는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이었다. 절판이 된지 꽤 오래되어 애서가나, 수집가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고가로 거래되곤 하던 그런 일종의 성배같은 책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내가 알던 표지와 썸네일이 달라 찾아보니 다시 재발매가 됐었다니! 그 소식에 대한 기쁨을 그 당시의 동시성과 함께 온전히 즐기지 못 한 것이 쪼금 아쉽다. 난해함에 대한 일종의 호기심과 정복욕이 뒤섞인 마음이 이끄는대로 살면서 다양한 난해함들을 여러 매체들을 통해 접해왔다. 어떤 것들은 끝내 이해를 하거나 받아들이거나 또 어떤 것들은 수수께끼 같은 무언가를 끝내 남겨둔 채 그 자체를 즐기거나 아니면 결국 거부하거나 불편함으로 씁쓸한 뒷맛을 남기곤 하는데,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을만한 난해함을 담고있는 것 중 하나가 이 소설되겠다. 점점 꺼내들 일이 줄어들면서 조금씩 닳고 녹쓸어가는 내 무딘 칼날으로는 그 난해함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여기서 이렇다 저렇다 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을 끝끝내 완독하던 그 시절의 집념과 끈기 그리고 좀처럼 식지않는 탐구에 대한 열정과 열망이 점차 사라져간다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 하수구 밑의 세계, 엘리게이터, 무언가 박혀 있던 ‘그것’의 눈… 이 글을 적는 와중에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당시에도 지금도 선뜻 설명하기에 난해한 몇 가지의 표상들은 이제는 책장 한 켠에 꽂혀 반짝임을 잃어가는 이 책을 언젠가 다시 꺼내들 날을 기약하며, 나의 안전기지였던 그 시절의 도서관을 추억하며, 여전히 나의 우주 안에서 일정한 빛을 내고 있었다. ‘이제 그 표상들은 그 시절의 나까지 함께 기표하는 것으로 기의함으로써 약간의 난해함이 해소되었지도 모르겠다. ’라는 근 몇 년간 사용할 일이 없었던 단어들이 사용된 문장을 쓰면서 오랜만에 꺼내든 칼을 다시금 갈아보고자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집에 도착하면 간만에 한 번 책장에서 꺼내서 만져보기라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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